2010년 4월 1일 목요일

용비불패 - 90년대 대표 무협만화

우리나라의 무협만화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혈강호를  꼽을 것이다. 열혈강호는 90년대 중반에 연재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연재를 하고 있는 장편이지만, 과연 이 만화가 좋은 무협인가 라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도 상당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의 무협을 본다면 천랑열전과 바로 이 용비불패 정도가 아닐까.

(천랑열전의 경우는 보지 못했으니 예외로 치고) 용비불패는 당시 아직 ‘장르문학’이 틀을 잡기 이전의 시기인 90년대 중반에 연재를 시작하여 정통 무협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주인공이 점점 강해지는 소년만화 분위기의 열혈강호와는 달리, 주인공의 어두운 과거와 황금성을 둘러싼 커다란 음모, 무협 특유의 판타지적 세계관 등은 만화 독자가 아닌 무협 독자를 사로잡는 무게가 실려있다. 이 작품은 이미 완결된 지 10년이 되어가는 작품이고 하니 전체적인 내용을 위주로 하여 소개를 해보고자 한다.

 

 

용비불패.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무협만화라고 꼽을 수 있다.

 

내용에 앞서 언제나 그렇듯 그림체에 대해서 한마디를 하고 넘어갈까 한다. 용비불패의 작가 문정후는 전문적인 무협작가이다. 그는 용비불패를 데뷔작으로 하고 있고, 이후 용비불패 외전, 괴협전등의 작품을 그리고 있다.

데뷔작이니 만큼 용비불패의 23권동안 그림체는 변화무쌍하게 진화를 거듭하는데, 그 변화라는 것이 정말 놀랍다.

초반에는 인물이 매우 어설픈 경향이 있고 액션의 경우에는 종종 인체구조를 의심케 하는 그림도 그렸던 기억이 있다. 초기작이라는 핸디캡은 출판사의 눈에 들어야 한다는 강한 압박감이 있었을 것이 분명한 만큼 의미 없는 개그 연출도 많이 보였다.(물론 어느 정도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에 일조하고는 있지만, 무언가가 어색하다)

 

그러나 권수가 거듭되면 문정후의 그림체는 크게 진화한다. 멀리 볼 것 없이 5권정도만 되어도 분위기가 크게 변한다. 쓸데없는 묘사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필요한 액션은 최대한 살리는 효율적인 그림체로 독자들의 만족과 작화의 효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형태로 변화하는 것이다.

 

만화의 초장부터 끝까지 한가지 변화하지 않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배경이다. 간혹 만화책 중에서는 스크린 톤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화제가 되는 작품들이 있지만, 그건 솔직히 편집증이고…, 펜으로 그려야 할 부분과 스크린 톤으로 처리할 부분을 잘 구분해서 만화의 퀄리티를 살리는 방향으로 고민을 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책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문정후의 그림은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스크린 톤을 사용하는 것 보다 펜 터치를 즐겨 하는 쪽으로 기운다. 하지만 그 펜 터치라는 것이 또 심상치 않다. 자세한 내용을 말하자면 또 한참 걸릴 터이니 직접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어두운 부분을 스크린 톤 처리한 것 외에는 모두 펜 터치다.

이 정도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곤 부럽지 않다.

서론이 길었으니 스토리에 대한 소개로 넘어가보자.

주인공인 용비는 현상금 사냥꾼으로 등장하며 시작한다. 천하에 악명 높은 사흑련의 련주인 천잔왕 구휘를 생포하여 호북성에 후송 중이던 용비는 작은 꼬마아이를 만나게 된다. 그 꼬마는 호북성에 데려다 주는 대가로 목걸이 하나를 그에게 주는데, 그 목걸이가 모든 일의 발단이 된다. 목걸이는 금화경이라는 이름의 보물로, 천하 3대 기물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은 세상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황금성에 들어가는 열쇠로, 그곳에는 수천억의 황금이 잠들어 있다고 전해진다.

호북성에는 아이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중원최고의 상단인 금천보가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숙부가 아이의 부모를 죽이고 금화경을 빼앗으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아이(율무기)는 용비에게 그것을 숨긴 것이다.

금화경을 둘러싸고 그것을 노리는 이는 그들뿐이 아니었다. 속속 등장하는 세력들. 마교, 적혈단, 무림맹 등 기라성 같은 단체들이 금화경을 노리고 용비를 쫓는 상황. 일련의 사건들을 거쳐 금화경의 비밀이 조금씩 풀리고 그들은 황금성에 다다르기 위해 무해곡으로 모인다. 그리고 일어나는 수라장…. 용비는 과연 어두운 과거를 딛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모여라 모여, 어리석은 우민들이여!

 

모 소년만화를 보면 캐릭터에 사연 없는 경우가 없다. 굳이 어떤 만화를 예로 들자면, 주인공은 집안이 괴물투성이에 전설의 남자의 후손이고, 가까운 동료는 세계 최고의 검사를 꿈꾸며 옛 첫사랑 기억을 잊지 못하며, 또 다른 동료는 거짓말을 참으로 만들기 위해 현실에 맞서고, 다른 녀석은 자신 대신 생명보다 소중한 다리를 내준 사장님의 기억을 간직한다. 뭐 그거 말고도 귤 밭의 추억이라던가 고고학자의 숙명이라던가 의술에 목숨 건 한 사람의 후예라던가 뭐 그런 사연들을 가진 캐릭터만으로 주인공 일행이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 만화에서는 굳이 그런 사연을 만들지 않는다. 주인공에게는 흑색창 기병대라는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이 있지만, 그 외의 인물들에게는 어떤 사연이라는 것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받은 치욕의 복수라던가, 옛날부터 계획한 일의 연속이라던가, 어렸을 적에 주인공을 한번 봤다던가…. 하지만 스토리에 반드시 필요한 사연을 제외하고 나면 더 이상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얼핏 설득력이 부족해지지 않느냐는 질문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또 그렇지 않은 것이, 적어도 스토리에 필요한 설득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는 것이다. 용비가 돈을 모으는 이유는 떨쳐버릴 수 없는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때문이오, 상관책이 배신한 것은 자신을 죽음보다 더 괴로운 치욕에 빠트린 스승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그 외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도 세계관의 특징으로 잘 커버하면서,(이를테면 마교가 굳이 무림을 재패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는, 무협이라는 특성상 굳이 의심할 이유가 없는 소재이다.) 이야기를 진행함에 있어 전혀 껄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진부하기는 해도 이만큼 설득력 있는 설정이 무협에 또 있을까?

 

용비불패는 어떤 면으로 보아도 훌륭한 만화다. 스토리, 작화, 약간 부족해도 충분한 설득력을 갖춘 설정들. 내용 전개의 호흡이 약간 불규칙한 면이 옥의 티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면 명작의 반열에 들기에 충분한 만화다.

굳이 무협팬이 아니라도 좋다. 23권 짧은 길이는 아니지만(외전까지 하면 조금 더 되지만…) 바쁜 와중에도 짬짬이 시간을 투자하여 이 만화를 한번 탐독하는 것은 절대로 후회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용비불패 1 - 10점
문정후 지음/학산문화사(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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