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5일 수요일

모야시몬 - 세균마저 캐릭터로, 더 이상의 캐릭터는 없다.

 

이제 세상에 의인화 되지 않은 캐릭터는 거의 없다. 각종 로봇, 벌레, 사이트, 심지어는 OS마저도 캐릭터화(혹은 모에화라고도 한다)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사물 혹은 관념적 대상이 인간(이라고 쓰고 미소녀라고 읽는다)의 형태로 형상화 되어가는 이 추세는 사실 어제오늘 시작된 일은 아니다. 선사시대, 아직 인간이 부족사회인 시절에도 이러한 행동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태였다. 그 당시의 그런 활동을 현대에는 ‘애니미즘’이라는 이름으로 칭하여 신앙의 일종으로 평가하고 있었다는 점만이 조금 다를 뿐이다.

농담은 그만두고, 실제로 모에화라는 행동은 단지 최근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수많은 판타지에서 정령이라는 이름의 미소녀(년)으로 표현되는 모습을 수 십 년간 지켜 봐왔다. 더불어 이런 활동의 주체가 되는 일본은 민속신앙으로 이미 다양한 종류의 인간의 형태를 지닌 요괴가 등장하고 있는 점을 보았을 때, 현재의 이런 캐릭터화는 어쩌면 자연스럽게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한가지 표현방식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모야시몬이 그러한 흐름의 연장선이라고 본다면 여러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세균을 캐릭터화 했다는 드러난 사실만큼은 놀랍다. 어떻게 놀라운지는 본문에서 지켜보도록 하자.

 

Tales of Agriculture! 농… 모야시몬!

 

누룩가게(일본의 전통 미소를 만드는 공방)의 아들로 태어난 타다야스는 어렸을 적부터 균이 눈에 보이는 특이한 체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조막만한 게 잘 보인다 수준이 아닌, 손가락 정도의 크기로 보일뿐더러 심지어는 그들과 대화마저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특이체질이었다. 시골에서 상경해 도쿄의 대학에 진학한 타다야스는 옆집인 양조장의 아들 케이와 함께 농대에 다니게 되고, 그곳에서 할아버지의 지인인 이츠키 교수라는 분을 만나 자신의 특이체질을 활용할 여러 가지 방법들에 대해 함께 연구하기 시작하는데…

사실 뭐 연구라고 해봐야 이것저것 확인하고 구분하는 정도일 뿐, 실제 이 작품의 내용은 대학생활에서의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이 주된 스토리이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크게 성찰하는 케이, 자신의 체질이 재능인지 단지 비정상인지를 고뇌하는 타다야스, 그 외에도 다양한 고민거리나 신념을 가지고 있는 모야시몬의 캐릭터들은 그저 웃긴 만화라고 보기에는 좀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는 케이네집. 일본 전통 사케를 만드는 양조장입니다.

 

이 작품의 주목할 점은 당연히 세균들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세균들에 대한 자기소개를 통해 어느 정도 교육적인 목적까지 달성하고 있는데, 그런걸 떠나서 이들은 그저 귀엽다.

작품의 전반에 타다야스와 대화를 하는 균들(특히 누룩)은 귀여운 목소리로 타다야스에게 태클을 걸고, 고전적인 말투의 요구르트균이 서로 쓸데없는 대화를 하는 모습들은 올망졸망한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심지어는 치명적인 식중독균인 O-157마저도 귀엽게 보일 정도이니 말 할 필요가 없다.

그 외에도 포도상구균, 푸른곰팡이, 효모 등의 다양한 균들이 이 작품 속에서는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살아 숨쉬고 있어, 이 작품만의 개성을 얼마든지 어필해준다.

 

 

다양한 균들이 캐릭터화 되어 있다!

 

앞에서 캐릭터들의 깊은 이야기들이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잠깐 했었다. 실제로 이 만화에서는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고민거리들을 풀어놓으면서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주인공의 친구인 케이는 양조장의 아들로서 정해져 있는 자신의 인생의 틀이 어떤 다른 선택에 의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면서, 여장을 해본다던가, 학교를 휴학하고 다른 일을 알아본다던가 하는 본래 그의 성격과는 전혀 다른 여러 가지 기행을 선보인다. 또, 부잣집의 딸로 태어난 하세가와 연구원께서는 부모가 정해준 약혼자에 의해 이미 정해져 버린 자신의 인생에 회의를 느끼면서 대학원이라는 탈출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이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끈다.

그 외에도 이츠키 교수님의 굳은 신념이라던가 그 외 다양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각해보아야 할 여러 가지 사실과 관계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이 만화가 만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인생관이 드러나는 하나의 드라마로 평가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고민거리 때문이라지만 여장이 너무 잘 어울리는 거 아니야!?

 

이 만화의 교육성은 앞에서 단지 한 줄로 요약한 것 보다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뒷부분의 균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균들을 소개하는 것들이 주로 그러하다. 하지만 그 뿐만은 아니다. 발효에 관한 권위자라는 설정의 이츠키교수의 입을 통해 세균에 의한 발효에 대해 다양한 종류의 강의가 이 작품에는 다수 포함되어있다. 술을 만드는 과정이라던가 다양한 발효식품의 영양학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들은 다소 전문적인 지식일지는 몰라도 우리가 일상생활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식들을 귀여운 균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

한가지 더 첨언하자면, 발효식품에 대한 이야기가 몇 번 나오는데, 여기에서 우리 나라의 홍어회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조금 집어 넣자면, 홍어회는 세계에서 2번째로 냄새 나는 음식이며, 첫번째는 유럽 북부 스웨덴 에서 생산되는 슈르스트뢰밍이라고 한다.

 

 

균 극장! 매화 끝에 있을 뿐 아니라 DVD에 특별판으로 추가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다양한 의미에서 볼거리가 많다. 균에 관한 지식, 발효식품에 대한 상식, 귀엽고 깜찍한 균들,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다양한 스토리들. 애니메이션은 아쉽게도 11편이라는 애매한 길이로 종영되었고, 실제 내용도 그다지 완결 지어지지 못한 상태로 끝났다. 게다가 원작은 국내에 정식 출판이 안되었다는 점은 통탄할 지경이다.

하지만 다행히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연재가 되고 있다. 혹시나 관심이 있고, 더불어 일본 원서를 보는 일에 거부감이 없는 분이시라면 한번쯤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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