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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5일 목요일

라이트 노벨의 공통점을 꼽아 본다면?

 

라이트 노벨이라는 분류는 PC통신시절 일본의 SF 판타지 포럼에서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위키백과 참고)

시기로 따지면 9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논쟁을 거쳐 현재에 와서는 거의 일반적으로 정착된 용어로, 가깝게 보면 애니나 만화, 심지어는 뉴스나 미디어에서도 라이트 노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가벼운 소설이라는 뜻의 light novel은 일반적으로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지만, 보통의 경우 읽기 쉽고 일러스트가 다수 포함된 소설을 라이트 노벨로 정의하고 있다.

 

사실 용어의 정의라는 것은 매우 민감한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 포스팅에서 (야겜, 갸루게, 미연시?) 분리하기 민감한 단어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라이트 노벨도 어찌 보면 이런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단어일 수 있을것이다.

내용면으로 보면 가벼운가? 판형크기 작은가? 삽화는 일러스트 다수인가? 장르면에서는 환상류인가? 레이블이 전용 레이블인가? 이야기의 중심이 캐릭터인가?

라이트 노벨을 정의하기 위해 이런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이들 모두를, 혹은 이중 일부를 정의에 편입시켜서 크고 작은 정의들을 내리는 모습들을 보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논쟁이 연상되어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인간의 생각과 개념을 의미하는 상징 즉, 언어라는 것은 시간과 시대상에 따라 미묘하게 바뀌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누구나 배우는 사실이고, ‘별로’나 ‘어처구니’ 라는 말이 수백 년에 걸쳐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생각해보면 굳이 이론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혹시나 해서 참고 삼아 이야기하자면, 별로는 예전에는 강조, 지금은 반 부정의 의미이다. 어처구니는 검색 ㄱㄱ)

과거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 그리고 현재의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성향은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사멸되는 과정에서 언어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지금 이순간에 하나의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는 내일 이맘때쯤 다섯 가지 정도의 의미를 중첩적으로 가지는 단어가 될 수 도 있고, 반대로 수많은 의미를 담은 하나의 단어가 한 순간에 사람들의 입에서 멀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고자, 나는 이 포스팅에서 라이트 노벨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현재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바, 혹은 어떠한 요소들이 모이면 라이트 노벨이라는 상징이 어울리는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의견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 포스팅은 어떠한 제안이나 정보도 아니며, 한 단어가 지니는 중첩적인 의미를 두루뭉수리한 범주내에서 공유하고자 하는 차원의 정보 교환을 목적을 띄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밝힌다. (쉽게 말하면 딴지 걸지 말고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자는 말이다.)

 

이왕 앞에서 인용문 씩이나 만들었으니, 위의 내용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내용이 가볍다

 

라이트 노벨은 기본적으로 성장소설이 대부분을 이룬다. 중고등학생의 주인공이 어떠한 계기로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그 속에서 사회성을 기르고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간다는 흐름은 이미 흔하다.

여기에서 ‘중고등학생’, ‘새로운 세계’, ‘이야기의 중심’같은 키워드는 상당한 문학적 상징성이 존재하는데, 이 포스팅에서 그런 부분까지 다루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저 소재들이 우리내 세상을 투영하여 독자를 흡입할 수 있는 대표적인 키워드임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이런 소재들을 사용하는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읽기가 쉽다. 이를테면 스즈미야 하루히의 캐릭터들이 대부분 30세를 전후하는 캐릭터이고 그러한 캐릭터를 반영한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면, 이 이야기는 더이상 라이트 하지 않은 노벨이 될 것이다. 배경이 학교이고, 인물이 학생이기 때문에 그제서야 그 이야기는 가벼우면서도 심오한 구성을 지닌 라이트 노벨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판형이 작다

 

일반적으로 소설책은 가로 약 15센티미터 세로 약 22센티미터 정도의 크기이다. 물론 10여년 전 일반적인 장르문학소설, 말하자면 판타지나 무협들이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의 소설책은 크기가 작다. 국반판 혹은 문고판이라고 부르는 이 규격은 약 가로 약 10센티 세로 약 15센티의 크기로 그야말로 손바닥과 비슷한 정도의 크기이다. 이 정도만 해도 소설책은 손가방이나 큼지막한 주머니 같은 곳에 쏙 들어가는 크기이지만 페이지수가 150~300여 쪽이면 어느 정도 알차게 분량을 채울 수 있다.(가격은 일단 신경 쓰지 말자) 일본의 라이트 노벨은 여기서 한층 더 작아서 세로가 약 13센티미터에 두께도 1.5센티를 거의 넘지 않는 크기이다.

이런 크기는 손이나 등에 많은 짐을 들고 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젊은이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요소(이를테면 차별성이나 출판 원가 등의 문제)가 물론 고려되어 결정된 크기이겠지만, 적어도 크기가 작은 것은 가벼운 소설이라는 말답게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삽화가 많고 전문 일러스트레이터가 참여한다.

 

사실 라이트 노벨을 출판하는 출판사들은 대표적인 만화 출판사이기도 하다.(아닌 경우도 물론 있긴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지만, 적어도 일본에서는 이런 특징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로 적극적인 크로스 미디어의 공략이다. 일본의 대부분의 출판사는 ‘팔리는’ 만화에 대해 절대로 만화만 파는 일은 없다. 애니메이션화나 캐릭터 상품, 나아가 드라마, 영화화 등 다양한 종류의 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인 상업행위를 하는 것이 대부분의 추세이다. 라이트 노벨은 얼마 전부터 제기되어 온 소재고갈현상의 탈출구로서 크게 각광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러한 점이 바로 라이트 노벨에 대한 출판사들의 투자로 이어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팔릴 가능성이 있는’ 컨텐츠에 대해 단지 출판하는 것 만으로 끝낼 이유가 없다. 더 많이 팔릴 수 있는 행동이라면 얼마든지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그들에게,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일러스트에 투자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장르는 환상류.

 

이 부분은 반드시 라고 할 수는 없다. 굳이 환상류가 아닌 장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라이트 노벨로 출판되고 있는 경우는 많다. 대표적인 작품은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 배경이 f안타지(오타 아님)라서 그렇지, 내용에는 전혀 판타지적인 요소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주류가 판타지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처럼 판타지라면 드래곤, 엘프, 드워프가 나오는 그런 정형화된 세계는 아니지만, 판타지라는 단어의 본래의 의미에서 본다면 라이트 노벨의 대부분은 얼마든지 환상류의 장르로 포함되고 있다.

(어찌 보면 그 원류가 SF/판타지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레이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레이블 이라는 것은 출판사의 브랜드이다. 이를테면 코발트 문고라고 한다면 슈에이샤(集英社)의 소녀취향 라이트 문고의 브랜드. 라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수의 라이트 노벨 레이블이 존재하며, 당연히 본류인 일본에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레이블이 존재한다(하지만 최근 출판사들의 돈 욕심에 숫자 면에서는 일본을 어느 정도 따라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레이블에서 출판되는 작품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그 레이블이 추구하는 작풍을 메인으로 하는 작품들이 출판이 될 것이며, 이는 곳 이들이 라이트 노벨임을 의미한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레이블에 속하지 않으면서 라이트 노벨인 소설들에 대한 범주이다. 일본에도 그러하겠지만 잘 모르겠고 우리나라의 판타지 소설 중에는 이런 레이블에 속하지 않은 소설들이 다수 있다.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대여점만 가면 레이블 안 달고 잘도 출판이 되고 있으니 찾아볼 필요도 없다.

과연 이 소설들은 라이트 노벨이 아닌 걸까? 일반적으로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생각해 볼 문제이기는 하지만, 뭐 일단 레이블을 달면 라이트 노벨인 건 확실한 것 같다.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

 

아…. 이건 좀 이야기하기 거시기 하다. 조금이라도 글을 ‘쓴다’는 행위를 해보지 않은 분들은 잘 이해를 못하실 것 같지

만, 일단 간략하게 써보도록 하겠다.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 일반적인 소설을 쓰는 과정은 주제->소재->스토리의 순서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무엇을 이야기할지 정하고, 그것을 어떤 것을 매개로 표현할 지를 정하며, 그리고 나서 어떻게 표현할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작가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확실하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왕도라고 할 수 있는 과정임은 틀림없다) 이렇게 풀어놓고 나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하지만, 라이트 노벨에는 이러한 비교적 정형화된 과정이라는 것이 없다. 원인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목격한 바로는, 작가가 경험이 부족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특히 우리나라는 작가가 점점 저연령화 되는 경향이 어느 순간 찾아와 이런 특징이 매우 강해졌다. 내가 굳이 이것이 조아라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음)

원인이야 어찌됐든, 정형화된 과정이 없이 시작되는 이야기는, 이야기의 흐름이 대체적으로 일관성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스토리의 시작과 종결 정도만 정해놓고 ‘매우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흐르게’만드는 스타일의 작문으로 귀결된다.

사실 이 점이 어찌 보면 출판사의 상술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캐릭터의 강세는 곧 캐릭터 상품으로 이어지며, 특이한 캐릭터가 곧 사람들의 주목으로 이어지는 경향을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크로스미디어를 노리는 출판사들도 어느 정도 부추기고 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다.

 

 

뭐 이래저래 말을 주절주절 늘어놨지만, 요점은 이렇다.

라이트 노벨이라는 장르는 굳이 구분하기 어려운 면이 크지만, 특징들을 쭉 살펴보면 위와 같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서두에 써 놓았지만, 이런 구분이 큰 의미는 없다. 쓰면서 그저 나도 이런 생각을 하는 구나 하고 정리를 하는 정도의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굳이 이 논쟁에 종결을 지을 생각도 없고, 이야기를 질질 끌어 논쟁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한가지 이런 주제에 대해 의견을 가진 분들에게 부탁을 드리고 싶을 뿐이다.

당신의 생각이 반드시 옳지 않을 수도 있으며, 논쟁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2010년 4월 9일 금요일

신보 아키유키의 작품들- 음악과 목소리 -

 

신보 아키유키의 애니메이션들은 오프닝과 엔딩이 하나같이 독특하다.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살린다는 점은 두말할 것 없고, 단순히 노래가 나오고 애니와 관련된 그림이 등장하는 오프닝, 엔딩화면은 아예 거부하고 있다.

보통의 경우 애니메이션의 도입부인 1편에는 아예 오프닝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초반 서너 편은 정상적이지 않은 오프닝을 보여주지 않거나, 편이 거듭하면서 오프닝이 변화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오프닝마다 가사가 다르거나, 2쿨에 3가지 버젼 따위의 미묘한 구성도 보여주고는 한다.

첨언하자면, 가사가 다른건 둘째치고 뭔가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속 안녕 절망선생의 오프닝. 편마다 오프닝이 조금씩 다른데, 최종판에서 완성된 오프닝을 볼 수 있다.

 

만화 등의 작품이 애니화가 결정되는 경우 많은 사람들이 원작과의 괴리감에 걱정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보 아키유키의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생각하면, 그의 작품들에도 그런 우려가 많다. 이 부분에서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데,

 

샤프트(신보아키유키)가 애니를 만들면 원작은 포기

 

혹은

 

신보아키유키라면 믿을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 두 가지 의견으로 팽팽히 맞서게 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작품마다 큰 편차가 있다. 극단적인 예로 네기마와 파니포니를 들 수 있다.

네기마의 경우는 더할 나위 없이 원작 파괴. 처음부터 원작과는 다른 노선으로 가겠다고 선언하고 시작한 이상, 원작 재현 같은 것은 기대할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긍정적인 부분도 있는데, 원작유지라는 가치를 떼어놓고 보면, 네기마의 ‘무분별한(!)’ 러브코메디 노선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라 해도, 네기마!?라면 고개를 끄덕일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파니포니는 조금 경우가 다르다.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라 개인적인 의견이 되겠지만, 파니포니의 원작 만화책은 좀 거시기하다. 그림체도 어수선할 뿐더러 내용은 조금 정신 사나운 편이다. 이것이 애니화 되면서 많은 것이 변한다. 내용이 정신 사나운 것이야 뭐, 원래 그런 개그물 이니까 그렇다 쳐도, 어수선한 그림체가 정적이면서 포인트가 눈에 띄는 신보감독의 스타일로 승화된 것이다. 이 정도면 원작에서 개선됐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원작과의 괴리라는 문제를 잦아들게 만들 요소가 신보 아키유키의 애니메이션에는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OST이다. (저작권문제로 OST를 직접 올릴 수 없는 게 아쉽다)

오프닝, 엔딩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살리는 양념이라 할 수 있는 OST는 신보 아키유키(혹은 그와 함께하는 음악감독)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어찌 보면 눈에도 띄지 않고, 별달리 특이할 게 없는 음악선정이지만, 사실 ‘특이할 게 없는 점이 대단한 것’이다. 특이할 것이 없다는 말은 곧, 위화감이 없다는 말이니까.

다양한 장르와 독특한 비트의 음악들이 적재적소에 파고들어 화면의 영상미를 돋보이게 하는 모습들은, 그의 애니메이션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하는 한 축이다.

 

 

또 한가지 부분은 바로 성우다. 사실 월영에서는 성우가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후의 애니메이션들에 따라다닐 사이토 치와(하즈키 역)와 무기 히토(류헤이 할아버지 역)가 이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정도? 파니포니에서부터는 모에(!)한 목소리의 노나카 아이가 신보 아키유키와 함께 일하기 시작하고, 호리에 유이, 스기타 토모카즈 등 거물급 성우가 대거 캐스팅 되기 시작한다.(작화에서 아낀 돈 여기다 다 쓰는 건가 싶기도 하다)

이들의 목소리는 물론 ‘잘 어울린다’ 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하지만 그런 당연한 이야기는 이곳에서 하고 싶지 않다. 신보 아키유키의 캐스팅은 ‘어? 이 목소리가 이렇게 잘 어울려?’ 라는 말이 나오는 캐스팅이다.

파니포니에서 특히 그런데, 약간 천연계인 노나카 아이의 목소리가 미스터리 캐릭터인 이치죠상이 된다던가, 소녀풍의 귀여운 호리에 유이의 목소리가 히스테리컬 공부벌레인 미야코가 된다던가 하는 부분은 그저 할 말이 없다.

파니포니에서 한가지 첨언하자면, 그 황당한 3가지 오프닝이, 주연급 성우인 오리카사 후미코(노란 바캉스), 노나카 아이(룰렛 룰렛), 호리에 유이(소녀Q)가 불러, 의미가 요상한 오프닝의 느낌을 잘 살려주는 것이 매우 인상 깊다.

관심이 있으신분은 오프닝 클립이 아닌, 실제 싱글앨범에 수록된 풀 오프닝을 들어보기를 권장하겠다.

그 이외에도 신보 아키유키의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작품들에서 활약하는 고토 유우코, 신타니 료코, 사와시로 미유키 등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 다채로운 성우들이 언제나 신보 아키유키의 애니메이션을 두드러지게 해준다.

 

신보 아키유키의 애니메이션에 볼거리는 이것 말고도 많다. 다양하게 삽입된 패러디들이나, 교묘하게 끼어있는 개그 캐릭터 등, 분리를 할 수 없어서 그렇지 정리하려면 아직도 많이 남았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직접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면서 발견하시기를 권하고 싶다. 감상평이라는 것이 원체 주관적인 부분이다 보니 블로그의 포스팅도 조심스러울 판에 이러쿵저러쿵 감놔라 배놔라 할 형편이 아닌 듯 싶다.

 

지난 포스팅에 이어 신보 아키유키의 특징들을 꼽아보았다. 사실 포스트를 나눌 이유가 없었는데…. 하루에 1 포스팅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약속과 글쓰기 귀찮음이 맞아 떨어져 포스트를 둘로 나누게 되었다 = ㅁ=;;

부족하게 채운 포스팅이라도 읽어주신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와 사과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다.

2010년 4월 8일 목요일

신보 아키유키의 작품들 - 화면표현력편 -

 

오래 걸렸다.

현재까지 방영한 신보 아키유키가 샤프트와 함께한 작품들 중 바케모노가타리를 제외한 모든 작품에 대한 소개가 한차례 끝났다. 이쯤 되었으니, 슬슬 신보 아키유키의 작품들을 총체적으로 이야기해보는 기회를 가져볼까 한다.

 

신보 아키유키(新房昭之)의 감독작품 – wiki japan

  • メタルファイター♥MIKU (1994年)
  • それゆけ!宇宙戦艦ヤマモト・ヨーコ (1999年)
  • The Soul Taker 〜魂狩〜 (2001年)

     

    이후 샤프트 소속

     

  • 月詠 -MOON PHASE- (2004年、総監督)
  • 魔法少女リリカルなのは (2004年)
  • ぱにぽにだっしゅ! (2005年)
  • ネギま!? (2006年)
  • ひだまりスケッチ (2007年、総監督)
  • さよなら絶望先生 (2007年)
  • 【俗・】さよなら絶望先生 (2008年)
  • ひだまりスケッチ×365 (2008年)
  • まりあ†ほりっく (2009年)
  • 夏のあらし! (2009年)
  • 化物語 (2009年)※シリーズ構成も兼任
  • 【懺・】さよなら絶望先生 (2009年)
  • 夏のあらし! 〜春夏冬中〜 (2009年)
  • ダンス イン ザ ヴァンパイアバンド (2010年)
  • ひだまりスケッチ×☆☆☆ (2010年)
  • 荒川アンダー ザ ブリッジ (2010年)

     

  • 일본어로 되어 있으니 알아볼 수 없는 분들을 위해 다시 쓰자면,(샤프트 소속 이후만)

  • 2004년 월영, 리리컬 나노하(이부분은 조금 불확실하다.)

  • 2005년 파니포니 대쉬

  • 2006년 네기마!?

  • 2007년 히다마리 스케치, 안녕 절망선생

  • 2008년 속 안녕 절망선생, 히다마리 스케치 X 365

  • 2009년 마리아 홀릭, 나츠노 아라시, 바케모노가타리, 참 안녕 절망선생, 나츠노 아라시 – 춘하동중-

  • 2010년 댄스 인 더 뱀파이어번드, 히다마리스케치X☆☆☆, 아라카와 언더 더 브릿지

  •  

    포스팅 많이도 했다….

     

    신보 아키유키의 작품에 대해서는 항상 논란이 많다. 포스팅에서 매번 극찬한 화면구성이나 색감, 연출방법 등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므로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보다는 신보 아키유키의 개인적인 부분에서 불거져 나오는 논란들이 몇 있는데, 이전 포스팅에 댓글로 언급된 혐한코드라던가 개인적인 주변사정이 어쩌고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 포스팅에 포함시키고 싶지는 않다. 이 블로그는 작품을 소개하는 포스트일 뿐, 감독 개인에 대한 신변잡기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신보 아키유키의 작품에 대해서, 뭐 뻔히 이전 포스트에서 손가락이 닳도록 이야기 해 온 것들이지만, 다른 작품들과 다른 특징을 꼽는다면, 그것은 바로 다채로운 색감이다.

    위의 스크린샷 들만 보아도, 애니메이션마다 선택되는 색깔이 다른 것은 물론 그 애니의 분위기를 잘 살리기 위한 화면구도, 색깔선정, 조명효과 등 어느 것 하나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이러한 연출기법은 사실 과거부터 어느 정도 시도된 바가 있다.

    아야카시 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나카무라 켄지 감독의 미스테리 판타지 장르로, 일본의 전통적인 怪(아야카시)들, 즉 흔히 말하는 요괴들을 소재로 삼은 작품인데, 이 작품의 색감은 진정 다채롭다는 말이 잘 어울린다.

    이러한 작품이 2006년경 제작되었던 것을 비롯, 2000년 초 중반의 작품들의 비주류 성향은 다양한 방향으로 모색되고 있었다는 점을 볼때, 신보 아키유키의 독창성 또한 그러한 흐름의 한 갈래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야카시의 한 장면, 이 정도면 칙칙한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좀 지나치게 컬러풀한 감도…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는 것은, 일본에서는 매우 ‘돈을 쓰는’ 작업이다. 수많은 인원이 투입되어 20여분의 애니메이션 한편을 만들기 위해 1~2주일을 투자하고, 그에 따른 비용은 작품마다 천차만별. 애니메이션은 도저히 그 자체만으로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광고? 얼마나 하겠는가?

    따라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고, 그에 비해 작품의 완성도는 높인다는 두 가지의 목표는 감독에게 있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지상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신보 아키유키의 대단함이 드러난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소수의 정지화면이 무려 십 수 초를 점유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그에 따른 제작비의 절감이란 단순히 계산해도 상당한 수준이다.

    애니메이션 20분 중에 10초씩 열 번 쯤 정지화면을 사용한다고 하면 약 2분, 7~10%정도이다. 이 정도의 여력이라면 한쿨동안 한두 편 정도는 더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런 여력을 그는 그저 아끼는 것에서 끝내지 않는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받아서 써야 하는 돈일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남긴 여력은 바로 나머지 부분, 특히 중요한 부분에서의 작화에 투입하여 작품성의 절대치를 높이는 곳에 사용하는 것이다. 억지로 입 모양을 뻐끔거리는 만화를 그리기 위한 노력을 줄이고, OVA에나 쓰일듯한 작화를 군데군데 심어 놓는 셈인데, 사람들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눈이 이러한 고품질의 작화에 집중되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싼값이 명작을 감상하는 셈이 된다.

     

     

    어느 누가 TV애니메이션을 싸구려라 할텐가. 이런 장면의 작화는 정말 놀라울 정도다.–네기마!? 의 한 장면

    내일 이어집니다.

    2010년 4월 6일 화요일

    애니메이션의 장르 구분은 무언가 차원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장르의 구분을 말하자면, 액션이니 드라마니, 느와르니… 다양한 말들이 있다. 굳이 구분을 한다면 작품 자체의 내용을 중심으로 구분하는 방법과 작품의 소재를 가지고 구분을 하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액션이나 스릴러, 드라마, 코미디는 작품 내용 속에서 메인으로 잡고 있는 스토리전개방식을 구분 기준으로 보는 것일 테고, 느와르니, 서부물, 로봇물 등은 작품이 메인 소재로 잡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특히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을 중심으로 하는 아키바계열 쪽에서는 이들과는 또 다른 방법으로 장르 구분을 하는 일이 최근 10여 년 사이에 등장했는데, 이번 포스팅은 그런 것에 대해서 간단히 요약해 보는 기회를 가질까 한다.

     

    (아키바계열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은 죄송하지만 검색을 부탁 드린다. 설명을 하자니 좀 길고, 포스팅을 하자니 좀 짧아서 보충설명을 할 지면이 없어, 이렇게 말씀을 드린다. 조만간 이러한 용어에 대해 모아서 한번에 정리하는 포스팅을 해볼까 한다.)

     

    지금 언급하는 장르 구분의 대상이 되는 작품들은 대부분의 경우 만화, 애니, 그리고 일부 포함이 되는 야겜들이 될 것이다. 아마도 영화 같은 작품들에는 이런 구분을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일본에서는 하는지 모르겠다.)

    간단히 나열하자면, 치유계(癒し系), 최루계(泣き系) 등이 대표적으로 분류되는 이름들이다.

    솔직히 이 말의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사람은 분명히 덕심이 가득하신 분일 것이고, 모른다면 아예 관심도 없는 분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런 말을 설명하는 것도 조금 조심스럽기는 한데, 개인적으로 정리하는 느낌에서라도 한번 포스팅을 해볼 까 한다.

     

     

    치유계(癒し系)

     

    간단히 설명하자면 보고 있으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그런 장르를 말한다.

    굳이 사전적으로 정의를 해보자면, 갈등이나 기승전결에 얽매이지 않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소재로 하여 잔잔하게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들을 분류하는 말 정도일까?

    치유계 만화는 방금 언급했듯이 갈등이나 기승전결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따지면 있기는 있는데, 만화책에서 느끼는 감성은 그 기승전결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 존재감을 느끼기 힘들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점은 최근의 소년만화 등을 통해 자극적인 이야기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크게 어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안타까운 점이라 하겠다.

     

    대표적인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카페 알파(요코하마 카이다시 기행)

     

    카페 알파는 90년대 후반에 연재되기 시작한 만화로, 치유계라는 장르를 개척한 선구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먼 미래, 일본이 바다에 가라앉아가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안드로이드 로봇이 구석진 시골의 카페를 운영하며 자신의 주인을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담은 이 만화는, 둥글둥글

    한 그림체를 바탕으로 잔잔한 구성의 이야기를 펼치며 은은한 감성의 향기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보통 글자가 많지 않은 작품(럭….)들의 경우 한 권 보는 데에 10분이면 충분하겠지만, 이 만화는 글자가 많지 않고, 더욱이 책 자체가 매우 얇음에도 불구하고 만화책을 읽는 데에 긴 시간을 투자하게 된다. 그것은 모 만화(럭….)처럼 액션이 다양한 그림이 아닌, 배경에서 풍겨 나오는 아련한 향기를 느끼기에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14권으로 완결이 되었으며, 화보집, OVA등으로 멀티 컨텐츠를 확장하고 있다.

     

     

    ARIA

     

    만화책으로 현재까지 12권, 외전으로서 AQUA라는 제목으로 2권, ARIA the Animation 1쿨, ARIA the Natural 2쿨(미투데이의 보노보노mk2 님의 지적으로 수정), ARIA the Origination 1쿨, ARIA the ARIETTA OVA 시리즈 등 발매된 작품의 다양성만 보아도 엄청난 이 작품은, 치유계 작품의 최대, 최고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화성에 사람들이 이주하고 살아가는 근 미래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화성 극지방에 있던 얼음이 생각보다 많아서 물의 행성으로 변모했다는 설정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너무나도 풍부한 물에 의해 마치 지구의 베네치아와도 같은 문화적 분위기를 갖춘 네오 베네치아. 이곳에서 손님들에게 곤돌라(수상 교통 및 관광 시설, 승무원 1명이 좁게 나 있는 수로를 오가며 관광객을 안내하거나 원하는 곳으로 이동해주는 역할을 한다.)를 태우는 수상안내원이 되고자 하는 주인공 아카리를 중심으로 개성과 감성이 넘치는 캐릭터들이 펼치는 잔잔한 스토리는 말 그대로 보는 이의 가슴을 치유하고 정화시켜주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아마노 코즈에의 부드럽고 깔끔한 그림체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특별할 갈등없이 등장인물간의 일상적인 대화만으로 이루어진 스토리로도 충분한 감성을 전달하는 데에 충분하다.

     

    여담이지만, 이 만화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대부분 ‘아’로 시작하는데 이 부분에 어떤 작가의 의도가 있었는지 아시는 분은 댓글을 부탁드린다.

     

    (치유계 작품들에 대한 정보는 다음뷰 만화카테고리의 1위 블로거인 아무리님의 블로그에서 참고하였다)

     

    이 밖에도 작품들은 더 있다. 이전에 포스팅했던 히다마리 스케치의 경우에도 치유계로 분류될 수 있으며, GA 아트디자인 클래스 등의 작품들도 포함될 수 있겠다.

     

    (여담이지만, 파니포니에 등장하는 치유계 마법소녀 베호이미는, 이름만 치유할 뿐 전혀 치유되지 않는다.)

     

     

    최루계(泣き系)

     

    일본에서는 나키계 즉, 눈물을 유발하는 작품들을 말하는 직관적인 단어로 만들어진 분류인데, 국내에 들어오면서 적당한 말을 찾는 과정에서, 혹은 누군가 센스있는 발안에 의하여 최루계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루탄이 눈물을 뽑아내는 것에 착안한 작명으로 꽤나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루계는 원작이 미연시 게임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전에 미연시라는 용어에 대해서 설명한 포스트가 있었는데,(미연시, 갸루게, 야겜?) 이때 분류했던 미연시라는 단어 그대로의 작품들이 바로 이런 경우에 속한다.(야겜이라는 속성보다는 스토리에 중점을 준 작품들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자주 보는 장르가 아니라 소개가 조금 부실할 수 있으니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클라나드(CLANNAD)

     

    (죄송합니다. 안 봤습니다.)

    KEY라고 한다면 아는 분은 알고 모르는 분은 이름정도는 들어본 유명한 미연시 게임 회사다. 대표작을 보자면 카논, 에어 등 걸출한 명작들을 제작해 온 회사이기도 하고, 제작된 대부분의 게임이 최루계인 점에서도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 있는 회사이다.

     

    게임 쪽에서 들었던 이야기로는 클라나드를 완전히 클리어 해야만 실제 본론인 애프터 스토리를 플레이 할 수 있는 구성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모든 내용을 읽어가며 플레이 한다면 가뿐히 100시간 정도는 넘는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들었다.

     

    주위에 덕심 넘치는 모 선배의 말을 빌자면, 작품의 수준을 키와 비교 했을때, 크로스 채널등은 가슴께, 카논이나 에어는 머리 끝 근처라고 한다면, 클라나드는 인공위성 궤도쯤이라고 한다. 뭐, 개인적인 취향이니까 이런 부분을 강조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클라나드가 별로라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본적이 없다. 

     

     

    최종병기 그녀(最終兵器彼女)

     

    이 작품은 그다지 덕심이 가득하지 않은 분들도 두루 감상하였다고 알고 있다. 다른 작품들이라면 에이 그래도 애니인데…. 라고 말하겠지만, 이 작품은 그런 의심을 할 필요가 없는 일반적 기준으로서의 명작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평범함보다 약간 아래쪽인, 여고생 치세가 자신의 몸에 특이점이 어쩌고 하는 이유로 전쟁병기가 되어 주인공과 함께 현실에서 도망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야기. 내용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점점 참담해지는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두사람의 고뇌가 끊임없이 눈물을 짜내는 작품이다.

     

    다카하시 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이전에 언급한바 있지만,(좋은사람 - 다카하시 신의 그림체 그 자체의 만화) 이 만화에서는 그 둥글둥글하고 가는 선의 느낌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더욱 역설적으로 분위기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말 바꾸는 것 같아서 좀 뻔뻔스럽게 느껴지지만…)

     

    이 외에도 앞에서 언급했듯 KEY사의 게임들 대부분, 수많은 유명 미연시 게임들 뿐 아니라, 반쪽달이 떠오르는 하늘 등의 소설 원작 작품, 최루계라는 말이 등장하기 전에 나온 게임이지만, 영웅전설 가가브 트릴로지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점프계(ジャムプ系)

     

    이 계열은 별로 할 말이 없다. 굳이 우리말로 한다면 소년만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장르라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매우 잘 알려져 있으므로 소개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러므로 장르에 대해서만 간단히 소개할까 한다.

     

    점프계 애니메이션은 사실 역사가 매우 길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점프계 라는 말에서 다른 최루계나 치유계라는 말이 나온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어원은 매우 간단하다. 일본 주간 만화 잡지인 소년 점프에서 연재되는 작품을 말하는 것이다. 이 만화들은 대부분 주인공이 강해지면서 세상에 맞서 싸워나가는 것을 주 스토리로 잡고 있으며, 이러한 부분이 독자들의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특히 청소년, 청년층의 막대한 지지를 얻는 장르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작품을 간단히 나열하면, 이전 포스팅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드래곤볼, 바람의 검심, 원피스 등이 있는데, 공통점을 굳이 찾지 않아도 쉽게 눈에 들어오는 특징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테면 주인공이 점점 강해진다던가, 그보다 더 강한 적이 금방 나타난다던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사실 소년 점프에 이런 만화들만 연재되는 것은 아닌데, 내가 느끼기에는 일본사람들도 이러한 비주류 장르에 대해서는 졈프계 라고 부르지 않는 것 같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으로, 일부 인원들이 건담 시드를 건담이라고 부르길 거부하는 것과 비슷한 심리가 아닐까?(이건 농담입니다)

     

    현재 최고의 점프계 만화라 할 수 있는 원피스. 게임, 만화, 애니 등 안나온 컨텐츠가 없을 정도.

    사실 점프계 만화는 액션만을 대상으로 하시는 않는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명탐정 코난을 들 수 있는데, 스토리 라인은  소프트한 추리물을 기초로 하여 자신의 몸을 작게 만든 검은 양복 일당을 찾아 다니는 내용으로, 어느 정도 소년만화의 라인을 따라가고 있다. 이런 작품은 충분히 점프계열로 넣어주는 모습을 보인다. 비록 추리만 하다가 전 일본 인구를 다 죽여버릴 기세를 보여도 말이다.

     

    점프계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바로 돈벌이다. 소년 점프에 연재되는 작품은 하나같이 엄청난 부수의 단행본 판매고를 기록하며 그와 동시에 다양한 멀티 컨텐츠화가 시도된다. 이것은 상업이 저변에 깔린 만화시장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포스팅 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점프계의 만화들은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어 수백 편의 애니메이션은 기본으로 OVA, 극장판, 다양한 캐릭터 상품, 게임 제작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어 그 작품 자체의 브랜드를 형성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점은 여러 각도로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만든 작품으로 돈 벌어 주는데 마다할 작가가 어디 있겠는가!? 점프에 연재를 성공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진심으로 작가에게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일단 이 정도만 적어보았다. 지금 당장 다른 계열들이 생각이 안 나서 이번에는 짧게 적지만, 아마도 조만간 다른 계열들에 대해 언급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화, 애니, 게임, 소설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와는 한 차원 다른 문화를 가진 일본이니만큼, 그들만의 분류를 갖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그들의 문화가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에는 물론 어폐가 있지만, 적어도 그 다양성에 대해서는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도 언젠가 다양하고 신선한 장르 컨텐츠를 폭넓게 창작해 내어, 일본의 위상에 지지 않는 위치에 설 수 있는 날이 올까?

     

    PS

    최근의 우리 나라의 장르문학이나 이러한 대중 컨텐츠 문화의 추세는 대부분이 일본의 모습을 가져오려는 움직임으로 점철되어 있다. 물론 벤치마킹이라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정체성 만은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2010년 4월 5일 월요일

    게임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게임은 이미 사람들의 생활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20년 전만해도 게임이라고 한다면 보통 스포츠 같은 것을 의미했지만, 언제부터인가 게임이라는 말은 컴퓨터 혹은 콘솔기기에서 플레이 하는 전자오락을 말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인터넷이라는 광활한 매체 속에서 온라인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다양한 게임을 즐기고 있고, 좋든 싫든 인터넷에 노출되는 사람들은 얼마간에 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의 게임에 접하게 된다.

     

    게임이라는 매체가 처음 사람들에게 알려진 시기에는 대부분이 퍼즐, 스포츠, 보드게임 등이 그 소재였다. 그 당시에는 사람의 지적 유희나 가벼운 긴장감을 주어 재미를 느끼게 함을 그 목적으로 두고 수많은 게임들이 만들어 지고 있었다.

    게임이라 함은 잠시간의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하는 용도로 사람들은 사용하게 되었으며, 그 이상의 의미는 크게 가지지 않고 있었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특별히 게임에 열광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특별히 게임을 나쁜 것으로 치부하지도 않았다. 그 당시의 게임을 고르는 기준은 그저 잠시간의 시간을 보내기에 즐거운 정도의 수준이면 충분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일까? 내 기억이 맞는다면 대략 10여 년 전 쯤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사이엔가 사람들은 게임이라면 당연히 그래픽이 좋아야 한다는 이상한 선입견을 갖기 시작했다.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이 게임은 어떤 그래픽 기술을 사용하여 어떻게 보이고 그로 인해 어느 정도의 컴퓨터 수준이 아니면 플레이 하기 힘들다 라는 말이 함께 따라다녔다. 그리고 사람들은 새로운 게임의 새로운 그래픽에 놀라워하고 게임의 가치가 크게 상승한 것처럼 받들기 시작했다.

     

    방금 언급한 10년 전. 그 맘때부터 다양한 3d게임들이 게임 그래픽의 신기원이 어쩌고 하는 말을 하며 게임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해도 좋은지 모르겠지만)을 제시했다는 데에는 아무도 큰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전에는 어땠을까? 그때도 그래픽이 게임의 가치를 재는 척도였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래픽은 게임의 기준이 아니었다.

     

    지금의 사람들에게는 고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기에서부터, 게임을 즐기는 기준은 그저 재미였다. 굳이 전자기기의 범주에 구애 받지 않더라도, 세상에 즐거움을 주는 대상에 아름다움이나 현실성을 그 가치의 기준으로 삼은 예는 없다. 보통 그런 식으로 분류가 되는 것들은 예술, 혹은 문화라고 표현하지, 게임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연아 피겨스케이팅은 스포츠지만, 누구도 연아에게 한 게임 뛰었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이전부터 게임의 절대적 가치는 어디까지나 재미 그 자체였다. 조금 전에 언급한 10년 전, 그 이전의 시기를 보면 그것은 명백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기에 재미있는 게임을 살펴보면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다음과 같은 게임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영웅전설
    FIFA
    밴티지 마스터 택틱스
    프로토코스
    스트리트 파이터
    심시티
    삼국지
    X-COM
    파이널 판타지
    바람의 나라
    파랜드 택틱스
    그란투리스모
    퀘이크
    대항해시대
    스타크래프트

    더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이중에 한 두 가지는 자신의 취향과 겹칠 것이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위에 언급한 게임들중에서 과연 그래픽의 비중이 큰 게임이 있을까? 물론 있다. FIFA 시리즈의 후기작은 그래픽에 상당한 공을 들였고, 파이널 판타지도 마찬가지다.

    (그란투리스모는 게임성 보다는 처음부터 리얼리티를 추구했기 때문에 약간 논외로 보고, 심시티는 그래픽의 뛰어남보다는 시뮬레이션을 위한 CPU연산 때문에 사양을 탔으므로 해당사항이 없다.)

    그럼 그 게임들이 과연 게임의 그래픽으로 게임성을 커버하였는가 하면 그게 또 그렇지 않다. FIFA의 경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 축구와 최대한 가까운 느낌의 게임을 만들기 위한 즉, 리얼리티적인 재미만이 주요 목표였다.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는 여타 RPG게임과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다양한 방면의 새로운 설정을 시도하는 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유명한 점이다.

     

    다른게임들은 어떠한가? 그래픽? 그딴 거 없다. 그저 재미있다. 재미있어서 했고, 해서 후회하지 않았다. 한번 게임을 하면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헤어나오지 못할 만큼 흡입력이 있었고, 당시 게임의 가격 약 3만원 정도는 별로 아까울 것이 없는 작품들이었다. 굳이 그래픽이 좋지 않아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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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 좀 그만 빼, 망할 2D게임들아 ㅠㅠ….

     

     

    게임의 기준은 고금을 막론하고 그것이 재미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재미의 기준에 그래픽의 비중이 높아져만 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다시 그전에 언급했던 10년 전. 이번에는 그 이후를 살펴보자. 이때에 재미있다고 알려진 게임들을 살펴보면,

    (뭐 굳이 표로 그리지는 않도록 하겠다.) 둠3, 파 크라이, 메달 오브 아너 같은 FPS라던가, 온라인게임의 붐이 일면서 리니지2, 와우, 뮤온라인 등, RPG게임 쪽은 원체 많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로테스크한 서양식 발더스게이트 같은 녀석들과, 아기자기한 일본식 쯔바이, 구루밍, 멋있는 쪽의 파판 시리즈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스타의 성공 이후로 시뮬레이션 게임이 다수 나왔는데 C&C 후반시리즈나 뭐 그 외 잡다 많은데 꼽기가 좀 귀찮다.

     

    모두 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지만, 굳이 이중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FPS의 약진이다. 그 이전에 FPS가 없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손에 꼽을 만큼 적은 건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온라인화 되는 추세도 주목할 만 하다. 뭐 이렇다 저렇다 논하는 건 내가 전문가도 아니니까 뭐라고 할 건덕지는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일개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이야기해 본다 하더라도 이상한 점은 분명히 있다.

     

    FPS라는 장르는 분명 재미있기는 하다. 하지만 장르의 특성상 그래픽이 재미의 요소를 어느 정도 좌우하는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 불평 불만을 토로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문제는 그것에서 이어지는 무언가 이상한 추세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이다.

    FPS라는 장르가 일종의 신드롬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서든 어택과 카운터스트라이크에 모이면서,(물론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나, 파 크라이 같은 패키지게임들을 포함한다) 어느 사이엔가 게임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게임의 권장사양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이 게임사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은 부정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무언가 사람들의 인식마저 이러한 방향성에 치우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점점 게임 전체의 인식으로 변화하면서 이상한 패러다임을 만들어 냈다.

     

    요즘 게임은 그래픽이 좋아야 재미있지…?

     

    주변에 대한 인식에 눈을 뜰 3살 무렵부터 게임을 해온 나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주장일 뿐이다.

    막말로 ‘니가 게임을 뭘 알아?’ 라고 묻고 싶어질 정도의 발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몇 년 전 영화 스타쉽트루퍼스가 게임화 되어 FPS 장르로 출시 된 적이 있었다. 여러 말을 할 필요도 없이 결론적으로 완전히 망한 게임이었다. 그래픽은 ‘상당히’ 좋았지만, 게임성이 병맛 넘쳤기 때문이다.

    세계 3대 게임 거장인 윌라이트의 최근작 ‘스포어’는 고도의 그래픽 ‘기술’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그래픽 수준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엄청난 대 히트를 쳤다.

    이런 예는 유독 저 두 가지 게임만이 아니다. 게임이 재미있으면 병맛 나는 그래픽이라도 엄청난 인기를 차지하는 것이고, 반대로 재미가 없으면 그래픽카드를 SLI로 250GTX 두개를 꽂아도 버벅이는 게임이라도 인기를 끌기 힘들다는 점이 중요하다.

     

    좀더 극단적인 예를 들어볼 수 있다.

    최근에 상당한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괴혼~굴려라 왕자님의 경우 그 그래픽 수준은 3D치고는 굉장히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중독성의 궁극이라고 할만한 슈퍼파워2에는 고도의 그래픽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한 해에 출시되는 FPS게임은 수 십여 가지임에도, 실제로 게이머의 기억 속에 남는 FPS는 한 해에 5가지가 될까 말까 한다. 이것이 바로 게임 그래픽의 허와 실이다.

     

    같은 RPG라도 다양한 재미요소를 가질 수 있다. 스토리도 요소가 될 수 있고, 세계관과 소재도 한가지 요소가 될 수 있으며, 그래픽 또한 한가지 요소로 충분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스 시리즈에 비해 베네티카라는 이름도 아무도 모르는 고 퀄리티 그래픽의 게임이 더 재미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식 약어로 취존이라는 말이 있다. ‘취향이니까 존중해주세요’라는 말의 약자이다.

    누구에게나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그래픽이 좋아야 게임을 하겠다는 사람도 분명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과연 게임이 그래픽에 그 가치를 좌우 당할 만큼 단순한 것일까?

    이 글을 보고 ‘그래픽이 좋은 게임만 해본 세대’는 물론 그래도 어느 정도의 그래픽은 기본적인 거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기회가 된다면 여러 가지 소재의 역사에 대해 가르쳐 주고 싶다. 누군가가 쌓아 올리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현재에 대해서 말이다. 게임에서의 역사의 중심에는 그래픽이란 말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는 점을 말이다.

    2010년 3월 19일 금요일

    야겜, 미연시, 갸루게, 비쇼죠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본 18禁게임들은 보통 야겜이나 미연시 등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도 흔한 커뮤니티에서는 갸루게, 혹은 비쇼죠게라고 하고, 그 자체의 장르를 구분하면서 나키게, 로죠쿠게등 다양한 단어로 표현하고는 한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언어라는것은 그 표기의 형태와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도와 의미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그 뜻을 표현하기 때문에, 단어를 사용하는데에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정보를 정확히 담기 위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뭐라고 부르는지는 사실 우리 알바 아니니까, 우리나라에서 쓰는 단어들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야겜 - 미연시


    두가지 단어는 어감부터가 매우 다르다.

    야겜은 말그대로 야한게임의 준말, 미연시는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의 준말로 그 어원부터 게임에 대한 표현의 여러가지 의도가 담겨져 있고, 또한 사용하는 사람도 비슷한 의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직관적으로 야겜이라는 말이 더 '음란하거나 외설적인 표현이 담긴 게임'이라는 뜻이 강하다는것을 알수 있는 것이다.


    남이 쓰는 말이야 알바없다지만, 그래도 일단 짚고 넘어가는 선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일본에서 쓰는 갸루게라는 말은 girl game이라는 단어를 일본식으로 읽은 ギャルゲ-ム에서 축약된 단어다.(그 외의 단어는 그리 흔히 쓰이지는 않는 편이다.)

    여자애게임. 말그대로 여자애가 나오는 게임이라는 뜻으로, 미연시보다는 야겜이라는 표현에 더 가깝지만, 기본적으로 어원 자체에서는 '야한 게임' 이라는 뜻 자체는 담겨져 있지 않다.

    이러한 점은 일본이 성문화에 매우 개방적이라는 면을 고려해보면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앞에서 언급한 야겜-미연시 두가지 단어로 돌아와 보겠다.

    단어의 의미로서 야겜은 말그대로 야한 게임이지만 미연시라는 단어가 야한 게임이라는 장르를 모두 포괄하고 있느냐고 한다면 썩 석연치 않은 면이 있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의 약어로서 미연시라는 단어는 장르의 제한이 주어진다.


    연애 시뮬레이션 아니면 어쩔껀대!?


    이를테면 소프트하우스 캬라의 위자드 클라이머(육성시뮬레이션 - 프린세스메이커와 거의 동일)라던가 대조난, 남국 도미니온(둘다 탈출 시뮬레이션 - 무인도 이야기 같은것들)라던가, 혹은 앨리스 소프트의 전국란스(턴제 전략시뮬레이션 - 신장의 야망 야겜버전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쉽다)같은 게임들은 공공연히 미.연.시. 라고 불러도 되는걸까? 엄연히 연애가 주 스토리가 아닌데도?(물론 연애가 없지는 않다. 결국은 여자랑 붕가를 하니까. 그게 연애라고 할수 없다고 말하면 할말 없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야겜이라는 말을 공히 사용하자고 제안하기에는 약간 저항이 있다. 무엇보다 야겜은 '음란하거나 외설적인 표현을 포함하는 게임'이라는 뜻이 강하기 때문에, 이게 무슨 불법적이고 음성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실 불법적이고 음성적이기는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비슷한 논쟁이 벌어진바가 있는 다른 분야의 단어를 살펴볼까 한다.(실은 크게 다른 분야는 아니지만)


    레즈물, 백합.


    이 두 단어는 같은 내용을 의미한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간단하게 소개를 하자면, 레즈물이라는 것은 두명의 여성으로 커플을 형성하여 애정스토리 혹은 애정씬(!)을 풀어내는 장르를 말한다. 백합이라는 것은 예전에 레즈물의 잡지 이름에 백합~~뭐시기 하는 시리즈가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백합이라는 말이 레즈물을 대변하는 단어로 자리매김하였다고 한다.(정보출처 : Everything of Ani Review - 네이버 카페) 사실 어원 자체는 두가지 모드 큰 의미는 없다. 동성연애라는것은 원래 사회에서 음성적인 현상으로 치부되는게 사실이었고, 그에 따라서 레즈라는 단어 자체도 음성적인 이미지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니까. 그리고 그것을 백합이라는 말로 포장했을 뿐, 그 자체의 의미는 크게 가지지 못한다는 점에서 두가지 단어는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할수 있는것이다.


    하지만 마리아님이 보고계셔 라는 작품(이 작품이 발단인지는 알수 없지만, 이 작품으로 인해 확실히 잘 알려졌다)으로 인해 백합이라는 단어에 대한 새로운 논란이 등장했다.

    후에 마리아님이 보고계셔는 소개할 일이 있을것이라 생각하므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중요한건 이 애니가 잔잔한 백합스토리라는 점.

    하지만 이 작품은 기존의 레즈물과는 달리 '여자아이들간의 플라토닉한 애정'을 메인 소재로 들고와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플라토닉' 이 성질이 바로 논란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리아님이 보고계셔로 인해 '백합'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된 수많은 라이트유저들은 마치 백합이라는 단어가 플라토닉의 대명사인양 이해하게 된다. 기존에 레즈라는 단어를 누구나 그렇듯 노골적인 표현이 포함된 장르로 이해하고 있던 사람들이 이 새로운 장르와 그 장르를 표현하는 단어를 접하고는 두가지에 미묘한 이질감을 느끼게 된것이다.

    그로인해 백합=레즈 라는 전통적인 주장과 백합<->레즈 라는 새로운 주장이 상충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의견을 적자면 후자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세상에 완전히 같은 말이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한다는건 있을수 없는 일이다. 이를테면 많이와 대단히라는 말은 같은 뜻이지만 그 용법이 다르듯이 말이다. 물론 저 예와 같지 않다고도 말할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백합을 플라토닉한 관계로 정의하고 말을 사용하는데에 있어서 '언어는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특징을 들었을때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미연시와 야겜으로 돌아왔을때, 미연시와 야겜중 어느쪽을 쓰는게 '우아한가'를 따진다면 물론 미연시쪽이 좀더 낫다고 할 수 있다. 누가 내가 하는 게임이 '야겜'이라고 자신있게 공공연히 떠들수 있겠는가?

    둘중에 하나를 떠들어야 한다고 하면 미연시를 말하는 편이 그나마 덜 쪽팔린다.


    둘다 사실 쪽팔리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야겜이라는 말을 사용하길 권하고 싶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야하잖아.


    불법이잖아.


    덕후냄새 나잖아.


    미연시게임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미연시라고 말하는건 전혀 문제가 없다. 클라나드. 미소녀 나오지, 연애도 하지, 시뮬레이션이지. 흠잡을데 없는 단어선택이라고 말할수 있다.

    하지만 장르가 확실히 있는 게임을 한번에 통틀어 말할때에도 미연시라는 단어를 쓰는건 글쎄...



    간만에 포스트를 하는데 리뷰는 어디에 팔아먹었냐고 물어보신다면,


    죄송합니다 장염이 왔습니다. 일주일동안 화장실 가느라 죽는줄 알았습니다. 지금도 배가 꾸르륵거려요.


    하지만 내가 장염이든 리뷰를 어디에 버리고 왔든, 이 내용만큼은 한번쯤 포스트를 하고 싶었다.

    가끔 몇몇 '빠'들이 미연시와 야겜을 구분할줄 모르고(혹은 그 외의 다양한 업을 지니고) 이땅에 덕문화를 뿌리내리게 하신 어르신들을 욕보이는 경우들이 있다. 그들은 정신 없음, 개념 없음, 싸가지 없음의 삼무정신으로 무장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귀찮게 한다.


    그렇다고 이 포스트가 여러사람(특히 삼무정신이 투철한 '빠'들)이 읽고 내가 생각하는 바른 용법을 공감해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게임 하는 입장에서 내가 무슨 게임을 하는가에 대해 의심스러운 단어를 사용하는것 자체에 대해 한번쯤 의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하는 마음에 이렇게 포스트를 마무리 한다.